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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전 국정원장 "박정희의 겨울공화국을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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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상의 역사산책 126]사상통제와 정치공작이 난무하던 시절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군인에 이어 중앙정보부 간부,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이 80살의 나이에 회고록을 냈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는 제목으로 2권을 출간했다.

상해임시정부 시절부터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권에 이르는 격동의 시대에서 겪은 현대사를 담담하게 서술했다. 가히 '현대사의 보물창고'라고 할 만한 저서이다.

이 저서에서 가장 흥미를 끈 대목은 박정희의 1인 지배체제가 국민을 억눌렀던 시절의 이야기다. 내가 초중고를 다니던 시절 대한민국의 정치권과 정보기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보자.

◇ 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를 혼동한 중앙정보부

이종찬 전 원장은 80평생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을 가장 충격을 받은 사건으로 꼽았다

 

1964년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에 들어간 이종찬은 보안부서로 보직을 받았다. 우편 검열, 영화 검열, 불온 간행물 검열이 주 업무였다. 이종찬은 충무로 입구에 있는 국제우체국으로 가서 창고의 재고를 조사했다.

창고에는 서적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물론 그 가운데는 북한의 선전물들도 있었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일본어판, 영어판 서적까지 수두룩하게 압수돼 있었다.

막스 베버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항해 물질만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도 역사변동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한 반공주의 학자였다.

이종찬이 책의 주인을 찾아보니 주모 교수로 막스 베버 전공자였다. 전임자에게 압수한 이유를 물어보니 대답이 걸작이다.

"막스라면 무조건 안된다고 해서 모두 압수했습니다"

막스(Max)와 마르크스(Marx)가 비슷한 이름이라고 무조건 분서갱유 언도가 내려진 것이다.

이종찬은 막스 베버의 대표작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책의 개요를 상부에 보고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달았다.

"이런 책까지 무조건 압수하면 국민들이 우리 정부를 얼마나 무식하다고 보겠습니까?"

그리고는 주 교수에게 연락해 압수한 책을 모두 돌려주었다.

◇ 박정희·김대중의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중앙정보부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초반에는 김대중 후보가 공화당 박정희 후보를 압도해 나갔다.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자 중앙정보부는 비상이 걸렸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지시에 따라 김영광 공작과장이 며칠 밤을 새워가며 대책안을 만들어 보고했다.

당·정·청 요인들이 모여 이 안을 둘러싸고 토론을 벌였다.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자.
백두진 국무총리, 백남억 공화당 의장, 길재호 당 사무총장, 김진만 당 원내총무, 김성곤 당 재정위원장, 박경원 내무장관, 김정렴 청와대 비서실장, 신직수 검찰총장,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다. 대통령 빼놓고는 실력자들은 다 모였다.

거기서 나온 방안들이 가관이다.

1. 김대중의 자금을 철저히 봉쇄한다. 현재 약 3억 원이 확보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 김대중이 지방유세에서 매일 국민의 귀에 솔깃한 공약을 터뜨리고 정치쇼를 계속 하고 있는데, 이를 분쇄할 준비를 해야 한다.

3. 야당인 신민당 유진산 당수와 갈라져 이번 대선에 소극적인 이재형 씨와 그 계보를 탈당시켜 가칭 국민당에 합치도록 한다.

4. 예비역 장군들에 대한 회유 대책을 강구한다. 특히 혁명주체 유원식 장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이에 관한 대책을 공화당이 맡아 추진한다.

5. 김대중을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뜨린 후 국회의원 후보 등록까지 저지할 수 있는 방책을 사전에 강구한다.

6. '대중반정'이란 책자에 "김일성 정권을 방불케하는 박정희 독재 정권" 운운한 대목이 있는데, 이를 국가보안법으로 묶을 수 있는 법적 대책을 마련한다.

이런 유치한 방안이 대한민국을 이끈다는 고관대작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대통령 선거 날짜를 정한 과정도 웃긴다. 이것까지도 중앙정보부 몫이란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김성락 부국장이 2~3일간 출근도 하지 않고 목욕재계하고 집에 모셔놓은 불상에 불공을 드리면서 정성을 모았다.

그리고는 그가 스승으로 아는 점쟁이에게 박정희, 김대중 두 후보의 이름과 사주를 주고 가장 좋은 날짜를 물었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선거일이 4월 27일로 결정되었다.

그날이 박정희에게 길일이고, 김대중에게는 흉한 날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점쟁이가 대한민국의 중대사를 좌지우지한 것이다.

이렇게 정치공작이 횡행하면서 신민당 내부에 불화와 균열이 발생한다.

김대중 후보의 조직 참모였던 엄창록, 그의 배신은 김대중 후보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중앙정보부의 보고를 들어보자.

1. 여당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김대중의 조직 참모 엄창록을 회유해 우선 200만 원을 주고 병 치료와 요양을 구실로 속리산으로 피신시켰다. 그리고 엄창록의 명단을 받아 김대중의 사조직을 완전히 밝혀냈다. 엄창록은 그 대가로 2,000만 원을 받았고, 선거 후 생계를 책임지기로 했다.

2. 신민당 부녀국장 박모씨는 200만 원을 받고 탈당했으며, 신문에 대문짝만한 광고를 게재했다. 그 외에도 쓰레기 같은 인물들이 많다.

3. 경남의 신민당 지구당 위원장 이모씨는 돈 100만 원에 서약서를 쓰고 대통령 선거에서 박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했다.

4. 조모씨는 돈 100만 원을 받고 공화당 사쿠라가 될 것을 맹세했다.

5. 부여의 권모씨는 전직 중앙정보부 직원인데, 철저하게 이중 스파이 노릇을 했다.

이런 짓거리가 중앙정보부의 대 야당 공작이었다. 이렇게 해서 박정희의 3번째 대통령 선거이자 마지막 선거는 개판으로 끝나고 말았다.

◇ 총알이 난무하는데 대통령을 지키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10.26사건이 벌어진 궁정동 안가의 현장 사진

 

세월이 흘러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고, 정권이 바뀌고 바뀐 후 드디어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첫 정권교체가 실현되었다. 김대중 정부의 첫 번째 국가정보원장(중앙정보부의 후신)으로 이종찬이 취임했다.

이종찬은 부임한 후 처음으로 10.26 사건 현장의 사진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끔찍했던 궁정동 안가 현장, 박정희 대통령이 총에 맞아 쓰러졌던 곳 주위에는 피가 낭자했다.

이미 시신은 육군병원으로 실려 나간 후였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자기만 살겠다고 피하려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삼층 문갑을 잡은 채 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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