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된 맥아더의 '원산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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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상의 역사산책 49]원산 앞바다…미군과 소련군, 일본군이 뒤엉키다

1950년 10월 1일 새벽 국군 제 3사단 장병들이 38선을 돌파하고 있다.

 

◈ 맥아더가 최악의 전략을 짜는 사이에 한국군 38선 돌파하다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하고 나서 그 다음 날인 1950년 9월 29일.

정일권 육군참모총장이 가장 북쪽에 진출해 있는 동해안의 김백일 1군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38선 인근에 국군의 작전을 방해하는 적의 요충지가 있나?"
"3사단 정면에 있는 하조대에 적이 저지선을 구축했습니다"

정일권은 워커 미 8군사령관에게 3사단이 38선 인근의 북한군 방어진지로부터 사격을 받아 큰 손실을 입고 있으니 공격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워커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수락했다.

본의 아니게 38선 돌파를 허락한 셈이 되었다.

쾌재를 부른 정일권은 북진 명령을 내렸다.

10월 1일 새벽 5시, 제3사단 23연대가 제일 먼저 38선을 돌파해 오후 2시에 양양에 돌입했다.

거의 동시에 서쪽에 있던 수도사단 18연대도 양양에 입성했다.

기다리던 통일의 길이 열린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 날의 감격을 기리기 위해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한다.

3사단과 수도사단은 경쟁적으로 북쪽으로 내달리면서 10일만에 동해안의 최대 요충지인 원산을 점령했다.

미국 정부는 9월 29일까지 북진을 승인하지 않았고, 북진을 승인한 유엔의 결의가 10월 7일에 나왔으니 국군의 북진은 사후 승인을 받은 셈이다.

물론 정일권의 작전은 이승만 대통령과의 사전 교감에 따른 것이다.

◈ 맥아더, 유엔군을 둘로 쪼개고 10군단을 원산에 상륙시키는 우를 범하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워커 미 8군사령관은 서울을 점령한 미 10군단을 배속받아 북진의 선봉대로 세우려고 했다.

미 8군사령관 워커 중장. 낙동강 교두보를 성공적으로 지켜냈지만 맥아더의 신임을 받지 못해 내내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낙동강에서부터 북상하던 미 1군단은 아직 수원 남쪽에 있었고, 미 9군단은 군산까지 진출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 북방에 있는 미 10군단이 평양으로 진격하면 미 1군단이 평양 동쪽으로 올라가 원산으로 방향을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국군 1군단이 동해안을 따라 북진해 원산에서 미 1군단과 합류하면 일단 북한의 가장 좁은 길목인 평양-원산 축을 장악할 수 있다는 전망을 가졌다.

이 계획은 미국의 합동참모본부나 대다수 지휘관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한껏 오만해진 맥아더는 엉뚱한 계획을 내밀었다.

1951년 4월 3일 유엔군사령관 해임을 8일 앞두고 맥아더 원수(조수석)가 리지웨이(왼쪽 첫째) 장군과 함께 전선을 시찰하고 있다.

 

10월 2일 맥아더의 명령이 하달됐다.

"미 제8군은 38선을 돌파해 개성~사리원~평양으로 진격하고, 미 제10군단은 원산에 상륙해 함경도 지역으로 올라간다"

한반도같이 작은 지형에서 북상하는 군대와 지휘권을 둘로 쪼개는 것은 누가 봐도 무모한 짓이었다.

서울 북쪽에 포진한 미 10군단을 빼내 남쪽 바다로 한 바퀴 돌려 굳이 상륙작전을 벌이는 것은 큰 실책이었다.

이미 동해안에서는 국군이 쾌속도로 원산으로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온갖 혼란을 겪은 끝에 미 제10군단은 인천과 부산을 출발해 원산 앞바다로 접근했다.

◈소련군은 기뢰를 부설하고, 일본군은 이를 제거하고, 미군은 배에서 기다리고...

원산 앞바다에서 기뢰를 제거하다 폭발하는 미군 함정.

 

1950년 10월 19일 미 해병1사단 등 10군단 병사들을 실은 대형 함정들이 원산 앞바다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뜻밖의 복병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산을 상륙 예정지로 정확히 예상한 소련군이 10월 4일까지 원산만에 기뢰 3,000기를 깔아놓았기 때문이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 본국에 요청해 구축함 1척, 소해구축함 2척, 고속수송함 1척, 그리고 쉬쉬 하며 일본 소해정 8척을 지원받았다.

기뢰를 제거하다 두 척의 미군 소해함과 한국 해군 516정, 일본 소해정 19호가 침몰됐다.

그 사이에 배에 탄 미군들은 배멀미에 시달리며 코미디언 밥 호프의 조롱섞인 공연이나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육지에서는 미 10군단보다 먼저 원산을 점령한 한국군의 쾌거를 축하하는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술에 취한 워커 미 8군사령관은 "지금 이 시간에 한국군의 쾌거를 모르는 멍청한 군단 하나가 바다에 떠있구나~"하며 자축하고 있었다.

미 해병 1사단이 원산에 상륙하는 모습, 무의미한 작전으로 끝나고 말았다.

 

드디어 10월 25일 미 10군단은 원산에 상륙했다.

아무 의미가 없는 '행정상륙'이었다.

원산은 이미 보름전에 한국군이 휩쓸고 지나간 후방으로 변해 있었다.

귀중한 병력을 한달 동안 도로와 바다에다 썩힌 셈이다.

원산에 상륙한 스미스 해병1사단장이 코멘트를 남겼다.

"이번만은 역사가 우리보다 앞서 갔다"

◈ 8,000Km를 달려온 터키군, 시행착오 끝에 용맹을 떨치다

한국전쟁에 참가한 터키군 병사들. 1개 여단 규모로 참전해 3년간 총 3,216명이 사상했다.

 

중공군의 2차 공세가 시작되던 1950년 11월 19일 청천강 북쪽에 있는 군우리.

미 2사단 장교들은 뜻밖의 전화를 받고 기뻐했다.

미 8군과 한국군 사이에 배치된 터키군으로부터 중공군과 맞붙어 200여명을 생포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즉시 정보장교와 통역관을 보냈다.

하지만 몇 마디 물어보지 않고도 이들이 중공군에게 참패해 남쪽으로 도망치던 한국군 7사단 장병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격전지로 투입된 터키군이 언어도 안 통하고 생소한 외국에서 처음 벌인 해프닝이다.

중부전선에 주둔하고 있는 터키군. 미국과 영국, 캐나다에 이어 4번째로 많은 군대를 한국에 파병했다.

 

이런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터키군은 정말 용감하게 싸웠다.

처음 참전한 군우리 전투에서 철수하는 미8군의 측면을 지키면서 사흘간의 시간을 벌어주었다.

1950년 워커 장군은 터키군 여단 지휘소를 방문해 군우리 전투에서 공적을 세운 16명의 터키군 장병들에게 은성무공훈장과 동성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훈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터키군 1여단은 15일 전 군우리 지역에서 미 8군의 철수를 용맹하게 보장했다.
여러분들이 전투에 투입된 적이 없었기에 처음에는 게릴라 소탕 임무만 맡겼다.
하지만 터키군에게 이러한 것은 필요없었다.
터키군이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터키군은 포위돼도 절대 자리를 이탈하지 않았고, 총알이 떨어지면 총검술과 수류탄 공격으로 명성을 떨쳤다.

최초로 참전한 터키군 1여단의 경우 총 병력 5,455명 가운데 36%인 1.953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런 인연 때문에 터키 국민들은 한국인을 '피를 나눈 형제' 또는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고 있다.

◈ 중공군, 흑인병사들을 처음 보고 놀라 달아나다

전선으로 출동하는 미군 흑인부대. 처음에는 이렇게 흑인으로만 구성된 부대를 운용했다.

 

1950년 11월 2일 미 해병1사단이 장진호로 북상하자 중공군은 기습작전에 나섰다.

함흥 바로 북쪽 수동의 산기슭에서 중공군 제42군 124사단의 병사들은 어둠이 깔리자 미군을 찾아 수색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선발대가 최전방을 수색하다 포탄 구덩이와 참호 안에 침낭 30여 개가 어수선하게 널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소대장이 손짓을 하자 병사들이 돌진했다.

그러나 중공군 병사들은 놀라서 얼이 빠졌다.

침낭에서 자고 있는 얼굴들이 전부 시꺼먼 것이었다.

중공군 병사들은 그때까지 흑인을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농민 출신들인 그들은 세상에 이런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지도 아예 몰랐다.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귀신이야~ 귀신이 있다~"

중국인은 귀신의 존재를 믿는다.

중공군 병사들은 방향을 돌려 왔던 길로 정신없이 뛰어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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