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투기' 엄태화 "엄태구 눈알 진짜 맞아 생일빵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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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인터뷰] '잉투기' 엄태화 엄태구 형제

 

“한국독립영화 역사의 또 한 캡터가 시작됐다.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박찬욱 감독), “젊은 감각의 새로운 영화, 영화계의 세대교체”(신정원 감독)

14일 개봉한 영화 ‘잉투기’에 쏟아진 찬사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제2의 류승환 류승범 형제’의 탄생을 알리며 영화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형인 엄태화 감독은 벌써 충무로에서 상업영화 데뷔작을 준비 중이며 동생인 배우 엄태구는 내년 1월 방영 예정인 드라마 ‘감격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기담’ ‘동창생’등에 출연했고, ‘인간중독’에도 캐스팅된 상태다.

잉투기는 앙숙인 ‘젖존슨’에게 급습을 당한 ‘칡콩팥’ 태식(엄태구)이 자신이 일방적으로 맞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자 치욕감과 분노로 복수를 다짐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온라인 상의 사건이 현실의 삶에 영향을 끼치자 그들만의 방식으로 몸부림치는 세 청춘의 이야기를 요즘 말로 ‘웃프게’(웃기면서도 슬프게) 그려냈다.

엄태화 감독은 최근 노컷뉴스와 만나 “교훈적인 메시지를 주거나 기성세대에 대한 반란으로 보이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우리세대가 보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위로를, 기성세대는 편견을 벗고 우리세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잉투기를 하게 된 배경은

엄태화/온라인은 2030대 세대와 밀접하게 닿아있는 소재인데, 본격적으로 다뤄진 적이 없다. 그래서 한번 해보고 싶던 차에 잉투기 대회란 게 있다고 해서 찾아봤다.(잉투기대회는 ‘잉여라 불리는 키보드 파이터들의 세상을 향한 격투기 도전’이라는 의미로 인터넷 게시판에서 댓글 달며 싸우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운동을 통해 만나자는 건전한 취지로 시작됐다.)

잉여세대의 특징이 키보드 배틀인데, 아무래도 인터넷에 악플이나 다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다

엄태화/ 저 역시도 그런 선입견이 있었고, 잉투기 대회 자체도 흥미위주로 접근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을 만나보니 잉투기 대회도 좋은 의도로 시작됐고, 임하는 사람들도 진지하고 열심이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20대 중후반 무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제 모습이 떠올랐다.

칡콩팥 태식은 격투기 커뮤니티에 복근 사진을 올리고, 앙숙인 젖존슨에게 당한 뒤 복수한다고 칼 들고 다니나 막상 격투기를 해본적도 없는, 게임 아이템을 파는 백수나 다름없다.

엄태구/실제로는 인터넷도 잘 안하고, 아직 2G폰을 쓴다. 그래서 극중 문화는 생소했으나 감정은 느껴졌다. 태식이 왜 그러는지,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나 감정은 다 이해됐다. 너무 매력적이었고, 시나리오가 참신해서 참여하고 싶었다.

지난 언론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면서 태식이 젖존슨 방에 숨어서 칼을 품에 안고 덜덜 뜨는 장면에서 왠지 짠했다. 왜 짠하지? 내 모습 같았다. 비록 상황은 다르나 혼자 열심히 준비하나 막상 카메라 앞에서 속으로 ‘후덜덜’거리는 내 모습과 겹쳐졌다.

실화를 재구성했다는 자막이 뜨는데, 어디까지 허구고 실화인가

엄태화/드라마 라인은 픽션이다. 잉투기 대회라든지, 그들이 싸우는 내용, 실제로 현피(게임이나 메신저 등 웹상에서 벌어진 일이 실제로 싸움,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신조어) 사건이 벌어진 점, 칡콩팥이나 젖존슨이란 아이디는 실제 온라인상에서 벌어진 것들을 참조해 조합한 것이다. 아이디는 시나리오 작업 당시 임의로 사용했는데, 대체할만한 좋은 아이디어가 없어서 그대로 썼다. 실제로 칡콩고(칡콩팥), 존 존스(젖존슨)라는 격투기 선수가 있다.

온라인서 소통하던 세 청춘을 현실세계로 끌어내서 세상과 부딪히게 한다.

엄태화/‘투명인간들이 나 여깄어’라고 외치고 있다고 할까. 잉투기대회를 만든 천창욱 대표가 한말이기도 한데 관심 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그걸 표현할 길이 안보이니까 인터넷상에서 발산하는 게 아닌가. 우리세대의 특징 중 하나가 소통방식에서 인터넷을 통하면서 게을러진 면이 있다. 태식은 웹상에 자신의 사진을 올리며 과시하는 등 간접적으로 세상과 소통해왔는데, 여러 가지 여정을 통해 직접 세상과 맞닿게 된다.

류혜영이 연기한 영자 캐릭터가 발칙하다. 쭈니쭈니는 불우한 환경의 태식, 영자와 달리 가정환경이 좋은데도 인생의 목적이 없다.

엄태화/개인적 성향인데 전 남자보다 여자들과 더 친하다. 마초 분위기 풍기며 술 한 잔 해야지 그런 분위기 별로 안 좋아한다. 오히려 커피숍에서 수다 떠는 거 좋아한다. 영자를 통해 마초성을 풍자하고 싶었다. 태식의 지나친 진지함과 남성성에 대한 반발로 영자의 존재를 키웠다.

 

보통 직장이나 돈이 있으면 잉여가 아니라고 보는데, 그 또한 편견이 아닐까. 쭈니쭈니는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으나 속이 텅 빈 캐릭터다. 세 캐릭터에 공통적으로 집어넣은 정서는 외로움이다.

태식의 여정은 젖존슨에게 급습을 당하면서 생긴, 안면타격 공포증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엄태화/어떻게 보면 태식의 상황은 변한 게 없고, 여전히 앞으로 뭐할지 모르는 상태다. 하지만 자기 안에서 뭔가 깨고 나온 느낌을 줌으로서 이 영화가 너무 씁쓸한 현실만 보여주는 것도 그렇다고 너무 성장해서 해피엔딩에 이르는 영화도 아닌, 그 중간 지점에 있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웃프다’는 그런 느낌이길 바랐다.

마지막 태식이 짓는 표정은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나

엄태구/그냥 몰입해서 연기하다보니 나온 표정이다. 촬영에 앞서 내가 얼마나 태식의 기분만큼 갈 것인가, 그런 고민을 했었는데 현장에서 분장을 하고, 실제로 눈을 맞으면서 몰입에 도움이 됐다.

엄태화/진짜 눈알을 맞아서 너무 충혈되는 바람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색 보정을 했다. 그날이 11월9일이었는데, 마침 동생 생일이라 우리끼리 ‘생일빵’이라고 했다.(웃음)

영자는 왜 태식이 싸우는 거리로 뛰어갔나. 둘이 정말 좋아하는지 관객들이 궁금해 할 듯하다.

엄태화/처음에 태식을 봤을 때는 단지 흥미로 접근했으나 함께 부대끼면서 친밀감을 느낀 게 아닌가. 연애감정보다는 동질감을 느낀 대상이라고 본다.

잉여에 대해 패배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세대라고 한다.

엄태화/태식이 옷을 벗어 던지는 행위가 항복의 느낌도 있다고 보는데, 영화상에서나마 패배할 기회를 얻게 되면 위로받을 수 있지 않나. 원래는 남녀노소 모두가 뒤엉켜 싸우는 엔딩을 구상했다. 예산상의 문제로 지금 수준에 이르렀는데, 과거 온라인 상에서 그저 아이디로 존재했던 사람이, 비록 잘못된 방식이기는 하나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으로 바뀌면서, 살과 살이 맞닿는 체험으로 바뀌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온라인이 아닌 현실에서 서로 살붙이고 싸우는 게 중요했다.

형이 감독, 동생은 배우가 됐는데, 어린 시절부터 꾼 꿈인가?

엄태화/서로 각자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경우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영상디자인과에 있는 영화 수업을 듣고 대학 졸업 작품으로 단편을 찍으면서 연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엄태구/월급을 준대서 진주에 있는 공군기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때 부모와 떨어져 남자들끼리 생활하면서 큰 문화 충격을 받았고, 또래집단에서 살아 남기위해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1년 만에 적응하고 나니까 문득 내가 정말 군인이 되고 싶은지 고민이 됐다. 금식기도까지 하면서 고민한 결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복싱, 그림 등 내 적성을 찾았고 우연히 친구가 연기를 배워보자고 해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적극적으로 학원을 알아봐주면서 연기로 방향을 잡게 됐다.(엄태구는 영자를 연기한 류혜영과 건국대 영화과 선후배 사이다.)

엄태화/어릴 때는 지금과 달리 동생이 여자애같이 곱상하게 생겨서 부모님이 아역 배우시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마도 은연중에 그런 생각이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어떤 배우, 감독이 되고 싶나.

엄태구/연기 잘하는 배우, 그리고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다.

엄태화/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본의 스즈키 세이준 감독이 연출한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을 보고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당시 감독이 휠체어를 타고 산소 호흡기를 달고 나타나셨다. 그런 상태로 일본에서 한국에 온 자체에 큰 감명을 받았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당시 80대의 고령에도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비결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앞으로 영화 만들 사람이냐, 내 라이벌에게 노하우를 알려줄 수 없다”고 답하는 모습에 나도 저런 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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